[日 전범기업 '미쓰비시 줄사택' 엇갈리는 목소리]전문가 "역사보존" - 주민은 "부지개발"
발행일 2019-03-04
일제 강점기 조병창이었던 미쓰비시 부평공장의 노동자 합숙소인 부평 줄사택을 두고 역사보존과 개발의 목소리가 함께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부평구가 오는 22일 이와 같은 주제로 학술 토론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사진은 인천시 부평구 미쓰비시 줄사택.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강제노동자 합숙소 유일한 건물
인근주민 "주거상태 열악" 호소
평가나선 부평구… 22일 토론회
역사적 가치판단 통해 방향결정
일제강점기 전범기업 미쓰비시(삼릉·三菱)의 흔적인 부평 '미쓰비시 줄사택'을 두고 보존과 개발의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오락가락'하던 부평구는 본격적으로 줄사택의 역사 가치 판단에 나섰다.
부평구는 오는 22일 '미쓰비시 사택의 가치와 미래, 그리고 부평'이라는 주제로 학술 토론회를 개최한다고 3일 밝혔다.
역사 보존과 주거 환경 개선 주장이 함께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줄사택의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먼저 논의하겠다는 취지다.
미쓰비시 줄사택은 일제강점기 조병창이었던 미쓰비시 부평공장의 노동자 합숙소로, 당시 1천명 이상이 이곳에 거주하며 강제 노역을 했다.
전문가들은 이곳이 사실상 한반도에 남아있는 유일한 강제 노동자 합숙소라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크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정혜경 일제 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은 "일제 강제 노동자들의 대규모 숙소가 남아 있는 곳은 부평과 부산의 '일광광산' 2곳인데, 부산의 경우 변형이 워낙 많이 이뤄져 원형의 모습이 거의 없다"며 "미쓰비시 측이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 배상을 하라'는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줄사택은 강제 노동의 증거이자 생활 흔적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반면 인근 주민들은 줄사택 부지의 개발을 주장하고 있다. 주거 환경 개선이 주된 이유다.
줄사택이 있는 부평2동에서 30년간 살았다는 이모(57·여)씨는 "지금의 사택은 수십 번의 보수를 거치면서 변형이 많이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누가 봐도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환경"이라며 "역사적 가치를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현실을 고려해 주민들을 위해 부지를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줄사택은 대부분 철거가 이뤄져 60여채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실거주자는 10가구 미만으로 추정되고 있다.
부평구는 지금까지 보존과 개발 중 확실한 입장을 보이지 못했다. 지난 2017년 줄사택의 역사적 가치를 활용해 마을 박물관 설립 계획을 추진했지만, 주민 반발 등으로 무산됐다.
지난해에는 줄사택 일부를 철거해 공영 주차장으로 개발하려 했지만, "줄사택의 역사적 가치를 먼저 판단해봐야 한다"는 구의회에 가로막히면서 현재 보류된 상태다.
부평구 관계자는 "보존, 개발에 앞서 줄사택이 우리 역사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먼저 판단하기로 했다"며 "그 결과에 따른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공승배기자 ksb@kyeongin.com